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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GM):침대에서 일어나보면, 완전히 낯선 공간입니다. 순간 눈을 뜨자 어둠 뿐입니다. 아니, 검정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빛이 없는 공간임에도, 마치 검은 캔버스에 사람만 덩그러니 그려진 것처럼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는 사람. 당신의 시선을 휘어잡는 단 한 사람.
그 사람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입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 큰 검은 망토를 몸에 두른 그는 자세히 보니 아주 어려 보였습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열 살 남짓 되었을까, 얼굴이 희고 둥근 소년이 당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밉니다.
히실라드:하하, 이것 좀 보게. (기묘한 어둠에 적응하려 눈을 가늘게 떴던 것은 의외의 등장에 단번에 풀어진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그가 나타나자 굳은 마음에도 꽤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익숙하게 손을 맞잡는다.) 안녕.
켈레브라스:(굳은살 하나 없는 어린 손이 그의 손에 쏙 들어간다. 소년보다는 아이에 가까운 요정이 수줍음을 타는 듯 눈을 내리깐다.) 나는 켈레브라스예요. 당신은 히실라드가 맞죠?
히실라드:그래, 맞아. (썩 기꺼운 눈으로 손을 두어 번 흔들고는 놓는다. 기억의 무게로 부담을 가지고 있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는지 전보다는 가벼운 얼굴이다.) 너는... ... 내 꿈 속의 켈레브라스지.
켈레브라스:하지만 진짜 켈레브라스와 다를 것은 없어요.
손님 (GM):아이는 그를 올려다보며 짐짓 근엄하게 말합니다.
켈레브라스:알고 계시죠? 이 문을 지나가려면 대가가 필요해요.
히실라드:(대답 대신 팔을 들어보이고 한껏 겹쳐입어 부해보이는 품을 내보인다. 가죽 튜닉, 양철로 만든 창병의 갑주, 장교의 표시인 날개 조각이 달린 투구, 의전용 망토, 군화, 평소에 입는 겉옷, 보이지 않는 속옷.)
켈레브라스:저승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어요. 문마다 입은 옷을 하나씩 벗어서 제물로 바치고, 제가 내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대요. (소년은 처음 보는 둘째자손의 무장이 신기한지 들뜬 투로 조잘거립니다.)
저는 그 투구가 마음에 들어요. 제게 주실래요?
히실라드:이야기로만 듣던 만도스의 홀이란 말이지. (투구와 두꺼운 가죽장갑을 벗어 네게 내민다.) 꿈이라도 얄궃은 일인데. 나와 네가 함께 여기에 있다는 건 말이야.
켈레브라스:(소년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입니다.) 그게 왜 얄궂은 일인가요? 미래에 저와 당신은 사이가 나쁜가요?
히실라드: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지. 아주 친한... ... (어떤 말로 설명해야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소년이 이해할 법한 말로 바꾸어 말한다.) 핀곤과 마에드로스만큼 친한 사이가 되거든. 하지만 같은 곳에 가지는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지. 그래서 얄궃다는 거야.
켈레브라스:와. (품에 가득 차는 투구를 끌어안으며 눈을 빛낸다.) 제가 인간과요? 참 신기하네요.
히실라드:인간에 별로 관심이 없나 보지? (팔짱을 끼고 내려다본다. 그는 이전에는 ―켈레브라스를 제외한 첫째자손이 오만하다고 익히 들어왔고,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켈레브라스:아뇨. 그들을 본 적이 없어서 싫어하지 않아요. (천진한 목소리.) 다만 내가 인간과 친구가 된다면 슬플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요.
히실라드:그건 왜 그렇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나, 남자는 적어도 소년에게 잔인하게 굴지 않을 정도로는 식견이 있었다. 말이 재미있다는 듯 소년의 앞에 턱을 괴고 앉는다. 손바닥에 닿는 어둠의 질감이 익숙치 않았다.)
켈레브라스:(그가 앉으니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소년은 부드러운 투로 대답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멀리 떠나간다면 분명 슬플 거예요. 그렇지요?
히실라드: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니? (
책의 결말을 미리 읽고 다시 초장을 보는 느낌이군.)
켈레브라스:아직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린돈의 요정들 중 친한 친구들도 떠나간 사람은 없어요.
히실라드:... ... 다행이구나. (처음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인다.) 앞으로도 네게 그런 행운이 계속되기를 바라야겠다.
켈레브라스:(맑은 얼굴로 마주웃는다.) 고마워요.
당신에게 첫 번째 시험을 내야 해요. 깜빡 잊고 있었어요.
히실라드:(다시 망토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켈레브라스:지금 저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읊어 주셔도 좋아요.
히실라드:... ... 이렇게 작은 너에게? (미간에 주름이 진다. 하고 싶은 말은 없이 시시때때로 바래는 연시의 기억들만이 빈 공간을 짓눌러, 향을 태우며 이 곳으로 온 것이 아니던가? 그는 아주 오랫동안 말을 곱씹어야 했다.)
켈레브라스:(소년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을 이미 배웠다.)
히실라드:네 인생은... ... 즐거운 일도 있겠지만 힘든 일도 많을 거란다. (메말라가는 입술을 한 번 적신다.) ... ... 하지만 나는 그 즐거운 일이 아주... ... 괜찮을 거라고 네게 감히 말해주고 싶어. 어떤 후회도 네가 느끼는 기쁨을 뒤흔들 수 없을 거라고. (참으로 대책없이 희망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감히 어릴 적에는 좋은 말만을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사라지지 않도록 내가 옆에서 도와주마.
켈레브라스:(소년은 흰 얼굴이 살구색으로 발그레해지도록 웃었다.) 당신은 참 친절하군요, 히실라드. 나는 분명 당신을 많이 좋아하게 될 거예요.
손님 (GM):소년이 문 옆으로 비켜섭니다. 나무로 얼기설기 짜맞춘 낡은 문이 그곳에 서 있습니다.
히실라드:저승의 문 치고는 소박한데. (다시 너를 바라본다.) 너는 여기에 계속 있는 거니? 이 곳은 정말로 어두운데.
켈레브라스:당신이 떠나가면 나는 없어질 거예요. 알고 있잖아요. 여긴 꿈이에요. (소년은 그 말을 웃으며 뱉었다.)
히실라드:너 자신에 대해 엄정하게 평가하는구나. 그도 그랬었지. (저도 모르게 그에 관한 것을 과거형으로 말했다.)
켈레브라스:(그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눈치챈 듯 눈짓한다.) 꿈이라니까요. (다시금 환한 웃음.)
히실라드:... ... 잘 있어. (다시 짧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맨손이다.) 다시는 보지 못하겠지만.
켈레브라스:잘 가요, 히실라드. 다음 문 너머에서 만나요. (아까와 같이 그의 손을 잡는다.)
히실라드:(짧게 손을 흔들고는 고개를 돌려 다음 문으로 넘어간다.)
손님 (GM):이 곳은 아까처럼 비현실적인 공간은 아닙니다. 마치 버려진 마을과 같습니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고 오직 무너진 대리석 건물들의 폐허만 당신을 반기고 있을 뿐입니다.
아, 세월의 무상함이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요정들의 왕국도 시간 앞에 무너져 버리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시간의 모래 뿐입니다. 어느 정도 아무 방향으로나 발걸음을 옳기다보면, 앞에 덩그러니 부서진 벽이 서 있습니다.
벽에는 장식 없는 소박한 대리석 문이 하나 달려 있네요. 문을 살펴보면 이런 글씨가 써 있습니다
에레쉬키갈의 희생제에는 반드시 제물이 필요하다
그녀가 가져간 것에 대한 무게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지하세계에서의 법이다
손님 (GM):피 흘린 자는 돌려받을 것이고, 눈물 흘린 자는 거둘 것이다
문 옆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망토를 입은 소년이 고개를 듭니다. 아까 전과 같이 앳된 얼굴이지만 아까 전보다는 조금 더 자란 것 같네요.
당신은 어떤 예감을 느낍니다.
망토를 벗은 문지기는 역시나 켈레브라스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십 대 쯤일까요. 한창 사춘기를 겪고 감정의 격랑이 심할 시절이죠.
켈레브라스는 이번에도 손을 내밉니다.
히실라드:(인간 아이들은 ―요정과 오래 함께 살던 습관대로 자연스럽게 타자화하고는 그것을 느끼지조차 못한다.― 한창 날뛸 시기에도 성인처럼 말갛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는 우습다고 생각하며 인사한다.) 켈레브라스. ... ... 이전 문에서 내가 소망했던 건 아직 유효할지 궁금한데. 아직 죽음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운이 좋은 편인가?
켈레브라스:(소년은 대답 대신 웃어 보인다. 그의 낯에서는 또래의 아이라면 가질 법한 활기나 즐거움 대신 어렴풋한 고독감이 감돈다.) 죽음을 보지 못했더라도 운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히실라드:(네 옆에 털썩 걸터앉는다. 흰 실로 미나스티리스의 나무가 새겨진 검은 망토를 벗어 정리하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말해줄 수 있어?
켈레브라스:(가만히 고개를 기울이면 등 중간까지 오는 엷은 백금발이 어깨 옆으로 쏟아진다.) 당신은 요정들의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가요?
히실라드:조금은. 오래된 책을 읽는 걸 좋아했거든. (머리카락에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듣는 기회는 언제나 귀하지.
켈레브라스:어머니께서는 싱골 대왕의 땅에서 살아가던 회색 요정이셔요. 아버지와는 린돈에서 만나 결혼하셨는데, (짧지 않은 침묵.) 아버지가 어머니께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대요.
히실라드:... ... (네가 말을 고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네가 말하고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뭔데?
켈레브라스:아버지는 마에드로스님의 군대에 있었대요. (소년은 속내를 감추듯 웃었으니 그것은 참담하게 보일 뿐이었다.)
히실라드:그렇구나. (소년의 안에 있을 공동이 상상되지는 않았다. 그때도, 지금에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겠구나.
켈레브라스:누구에게 말하겠어요. (하며 고개를 저어 보이고는.) ... 당신 망토가 참 멋지네요. 그걸 제게 주시겠어요?
히실라드:누군가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사실 꽤 도움이 된단다. 적어도 백 살은 살았을 네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깔끔하게 정리해둔 망토를 네게 건넨다.) 넌 내가 이 망토를 입는 것을 좋아했지. 용맹해 보인다고.
켈레브라스:(윤기가 도는 검은 직물과 그 위에 수놓인 은사를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그랬을 것 같아요. 당신과 근사하게 어울리는걸요. 저를 위로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들어 주신 건가요?
히실라드:아니, 난 그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 아니야. (푸른 눈은 잠깐 빛을 잃었다.) 하지만 네 일은 유감이구나.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 따로 살기로 하셨니?
켈레브라스:아뇨.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아직 굳은살도 흉도 없이 부드러운 손가락이 의미 없이 은빛 나무의 가지를 더듬듯 망토를 매만진다.)
히실라드:(그 손길을 멍하니 바라본다. 손을 감싸줄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는 그러기에는 너무 컸고, 지탱하는 것은 기억뿐이었으므로.) 사랑을 해본 적은 없겠고. 요정은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한다던데.
켈레브라스:네. 아직은요. 잘 상상이 되지도 않아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모습 말이에요. (조금 수줍은 듯 웃었다.) 당신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저와 이런 얘기도 나누셨나요?
히실라드:자주 나눴어. 슬플 때마다, 힘들 때마다, 잠이 안 올 때마다,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 ... 나의 걱정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 네가 옆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주 웃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 소중함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알겠구나
켈레브라스:알고 있어요. (소년은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무언가를 숙고하듯 말이 없다가, 가만히 그를 돌아본다.) ... 당신과 나는 참 가까웠나봐요.
히실라드:우리는 사랑하던 사이였어. (그 말은 마치 선고와도 같다. 과거형이라는 점에서 더 그러했다.)
켈레브라스:(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참 신기한 일이에요. 나는 분명 괴로울텐데.
히실라드:그래도 넌 나를 사랑하지. (
나도 그것은 경이와도 같다고 생각했어.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 말이 있다.) 내가 네게 말해줄 수 있는 건 그 뿐이구나. 나는 지금의 네게 만족스럽니? (고개를 기울이고 너를 빤히 바라본다.)
켈레브라스:내 눈에 당신은 참 근사해 보여요. 특히 파란 눈이요. (호감이 어린 낯으로 미소짓는다.)
히실라드:... ... 인간인데도? (그 푸른 눈은 조금 찌푸려진다.)
켈레브라스:인간인데도요. (무릎에 놓아 두었던 망토를 추슬러 안는다.) 이제 당신에게 시험을 내야 할 것 같아요.
히실라드:(눈을 두어 번 깜빡인다. 수긍의 태도였다.)
켈레브라스:당신이 생각하기에, '나'와 당신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히실라드:사실 그건 아주 간단해. 내가 문제야. 너는 언제나, 아주 좋은 사람이지. (순간 눈에 죄책감이 스친다. 나는 왜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너를 사랑할 수가 없을까?) 차라리 기억마저 없었더라면 이기적으로 굴 수라도 있었을텐데, 네가 내게 남겨준 기억은 너무나도 소중해서 내가 너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게 만들어. 그래서 나는 네 옷자락이라도 붙잡으려고.
켈레브라스:(그의 말을 가만히 경청한다. 봄날의 새싹처럼 밝고 환한 눈동자에는 -그에게 익숙할- 애수나 괴로움 대신 무지에서 비롯된 의아함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당신을 가엾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요.
이제 가야 해요, 히실라드.
히실라드:(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네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구나. 이 모든 일은 네 탓이 아니라는 것.
켈레브라스:당신을 응원하고 싶어요. 이곳까지 오는 이들은 정말 드물거든요. 행운을 빌게요.
손님 (GM):당신은 대리석으로 된 작은 문을 열고 다음 문으로 향합니다.
손님 (GM):아무 것도 없는 모래사장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마치 동부의 가운데에 홀로 버려진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모래의 산은 모래의 바다가 되어 무너집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전갈도, 사막여우도, 방울뱀도 없습니다. 어린 왕자도 이런 곳에는 오지 않았을 것 같네요.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광대한 죽음 그 자체입니다. 이 곳에도 역시 부서진 벽이 모래밭에 파묻혀 서 있습니다.
벽에는 장식 없는 청동문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문의 크기가 점점 커져가는 것은 기분 탓일까요? 첫번째 문만 해도 당신이 겨우 몸을 수그려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세번쨰 문은 어느새 큰 집의 대문만큼 커져 있습니다.
그 옆에는 망토를 두른 사람이 의자에 몸을 수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히실라드는 문에 글씨가 써져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대 산 자 되어 죽음의 여주인의 땅을 밟은 불경을 저지른 신발을 바치라
동시에 문 옆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망토를 입은 청년이 고개를 듭니다. 그는 청년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젊고 정정한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GM):망토를 벗으면 그는 어느 새 어린 티를 벗고 장성한 성인이 되어 있습니다. 망토를 벗은 문지기는 역시나 20대 시절 켈레브라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정의 나이는 눈으로 짐작할 수 없지만요. 분명 그는 고목만큼 나이를 먹었을 것입니다.
히실라드:(남자의 앞에 가서 선다. 자신을 알 나이일지, 모를 나이일지 짐작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켈레브라스:(머리타래를 땋아 내리고 회색요정 군인들이 입는 가벼운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은, 양 다리가 모두 달려 있다.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부드러우나 조금은 쾌활한 어조로 인사한다.) 안녕, 히실라드.
켈레브라스:그런가요? (가벼운 걸음걸이로 그에게 다가간다. 양 다리의 발걸음 소리가 똑같다는 것은 그에게는 분명히 어색하리라.) 당신이 반가워서 그런가봐요.
히실라드:당신이 시험을 내는 걸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갑주를 매고 있는 가죽끈을 하나하나 끌르기 시작한다.)
켈레브라스:나는 수수께끼를 즐기는 성격은 아니에요. 그렇죠? (그가 신고 있는 군화에 눈짓한다.) 그것도 줘야 해요.
히실라드:(순순히 허리를 굽히고 군화의 끈도 푼다.) 나를 적극적으로 부려먹는군.
켈레브라스:이제 내가 그대에게 편안하게 느껴질만큼은 나이를 먹었나봐요. (망토 아래로 매고 있던 화살통을 추어올린다.)
히실라드:사실 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지. (성한 다리를 빤히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켈레브라스:(그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그에게 시선을 되돌리며 손을 내민다.) 이리 주겠어요?
히실라드:(군화는 선뜻 내미나, 촘촘히 갖춰입은 군장을 푸는 것은 시간이 꽤나 걸리는 일이었다, 몸에 판갑 일부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라 꽤나 우스워 보인다.)
켈레브라스:(조금 웃고 말았다. 군화를 받아들어 망토 안에 밀어넣고는 -그것은 어디론가 사라지듯 부피감 없이 들어갔다- 그가 갑주를 벗는 것을 도와 준다.)
히실라드:(팔과 다리 보호대까지 모두 벗어내고 나서야 한결 몸이 편안해진 듯 짧게 기지개를 켰다.) 지금은 어느 시절이지? 당신 말이야.
켈레브라스:(군장을 정리해 마찬가지로 망토 안에 갈무리한다.) 태양의 시대 제 2 시대, 삼천 년이 조금 넘었어요. 저는 천 년을 넘게 살았지요.
히실라드:아직도 3시대로 안 들어왔단 말이지. (상상도 되지 않는 기간에 턱을 매만진다.) 당신은 정말 노친네야.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용보다 당신이 더 대단해 보이는군.
켈레브라스:노친네라니요. (미간을 찡그리며 퍽 장난스럽게 웃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하네요.
히실라드:유머감각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마음에 들어.
켈레브라스:당신과 만날 때쯤이면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될까요?
히실라드:글쎄, 내가 더 냉소적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입술을 비틀며 웃는다.) 그래도 좋아 보이니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이제 세번째 문이지. 아직도 네 차례가 남았고. 당신의 인생은 굴곡이 완만한 편은 아니니... ...
켈레브라스:맞아요, 네 차례가 남았죠. 그리고 나는 시험을 내야 해요. (여상스러운, 엷은 미소.) 내 뺨을 때려요, 히실랃,
(히실라드.......)
히실라드:... ... 지금? (제 손을 한 번 바라보고 너를 응시한다.) 그게 시험이라면 터무니없군.
히실라드:... ... (그는 수긍과 복종이 빨랐다. 더 덧붙이지 않고 네 뺨을 온 힘을 다해 갈긴다. 마음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 그를 슬프게 했다.)
켈레브라스:(건장한 청년의 몸이 휘청거리고 고개가 꺾인다. 켈레브라스는 다만 슬픈 눈을 하고 그를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손등을 입술에 눌렀다가 떼어 피가 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다시 해요.
히실라드:(주먹을 꽉 쥔다.) 피를 보는 게 목적인가?
히실라드:(주먹을 쥐고 네 뺨을 다시 한 번 후려갈긴다. 입술을 저도 모르게 깨물어 애꿎은 제 피가 배어나온다.)
켈레브라스:(통증에 눈을 질끈 감으며 뒤로 두 발짝을 물러섰다가 돌아온다. 볼 안쪽이 터져 입가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손을 들어 그의 입술에 맺힌 피를 문질러 닦아 주었다.) 당신의 피는 뿌릴 필요가 없어요.
히실라드:알아, 실수한 거야. (무심코 느껴지는 경계심에 네 손을 쳐내고 제 옷자락으로 거칠게 피를 닦아낸다.)
켈레브라스:(손이 쳐내짐에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불쾌했나요? 미안해요. ... 이제 문을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히실라드:아니야, 나는... ... (무언가 말을 이어가려다가 얼굴은 일그러진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미안해, 너를 정도 이상으로 때려서 미안해? 너를 사랑하지 못해서, 네 피를 닦아주고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리되지 않은 말은 구겨져 들어가고 그는 자신에 대한 구역질이 나와 대답도 없이 다음 문으로 향했다.)
손님 (GM):켈레브라스는 당신을 붙잡지 않습니다. 입술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가만히 비켜설 뿐입니다.
당신은 청동으로 된 큼직한 문을 열고 다음 문으로 향합니다. 더 이상 장신구를 내어놓는 것처럼 만만치가 않습니다. 앞으로 가는 길은 이만큼 녹록치 않으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걸까요?
손님 (GM):문을 열고 들어가자 짠내가 훅 끼칩니다. 당신이 걷는 해변을 끼고 옆에는 드넓은 바다. 멀리도 기어와 부서지는 포말이 맨발을 간지럽힙니다.
뒤에 깊은 숲을 낀 영원한 해변가. 해안선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계속 바다만 있을 것 같은 공간입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갈매기도, 바닷새도, 물고기도, 모래밭에서 기어다니는 개나 조개도 없습니다. 살아 숨쉬는 것들이라고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 곳에도 무너져가는 벽과 거기에 달린 문이 있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강철로 된 문에 잔뜩 조각되어 있습니다. 모르고스에게 붙잡힌 죄수들이 이러했을까요? 문 옆에는 망토를 두른 사람이 의자에 몸을 수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당신은 문에 글씨가 써져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치 말이라도 거는 것처럼, 이상한 문구입니다.
금실로 장식된 여왕의 머리칼도 서캐가 사는 거지의 머리칼도 무덤 속에서는 흙으로 돌아가나니
손님 (GM):동시에 문 옆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망토를 입은 청년이 고개를 듭니다.
그는 영원히 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요정의 불멸과 아름다움을 모두 잃고 노쇠한 듯 보입니다.
핏기 없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무릎 아래로는 다리가 잘려나간 채, 환부를 감싼 붕대에는 아직도 핏기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요정이 마른 입술을 열어 말합니다.
켈레브라스:(고통에 지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나는 일어날 수 없어요. 그대가 이리 와야 해요.
히실라드:(말없이 네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는다. 익히 기억하던 대로, 입을 맞추지는 않는다.)
켈레브라스:(살갗이 벌어져 붉은 속살이 드러난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쥔다. 전쟁터에서 급한 상처만 치료한 채 도망쳐 나온 패잔병과도 같다.) 쓰인 글을 읽었지요.
히실라드:내 머리카락은 그저 검은 지푸라기보다도 못하지. (순순히 자신의 왕 앞에서 그러하듯 고개를 숙인다.)
켈레브라스: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그대의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 것이 마음아파요. (가슴을 가로지르는 가죽끈에 매달린 검집에서 단도를 뽑아든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오르크의 피가 아직 마르지 않은 채 칼날에 엉겨붙어 있었다.)
히실라드:우리는 그저 꿈 속의 인연일 뿐인데, 벌써 날 그렇게나 좋아하게 되었나? (농담임에도 그 목소리는 퍽 무미건조하다. 머리카락이 잘리는 것에는 아무 유감도 없었고, 단도에도 그러했다. 모두 익숙한 광경이었다.)
켈레브라스:누구의 것이든 그랬을 거예요. (그의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당겨 쥐고 능숙하게 잘라낸다. 그는 필시 수많은 오르크의 목을 이런 방식으로 잘라냈으리라. 마른 한숨을 내쉰다.)
히실라드:(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 한 번 눈을 깜빡이고는, 제 머리를 털며 일어섰다.) 설마 이것이 시험은 아닐테지.
켈레브라스:(손을 힘없이 떨어뜨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손아귀 아래로 흘러 떨어지게 한다. 그것들은 모두 바다 쪽으로 날아가 잠겨 버렸다. 무언가 말하려다가 밀려오는 통증에 신음하며 이를 악문다.)
히실라드:... ... 내가 있으면 당신이 힘들기만 하겠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조각된 강철문을 바라본다. 그는 침대에서도 종종 통증 때문에 몸을 떨며 깨고는 했던 것을 기억한다.)
켈레브라스:(목덜미가 드러나도록 짧아진 그의 머리카락을 눈에 담았다. 통증이 불러온 혼몽함이 요정을 애상적으로 만들었다.) 그대는 전쟁을 아나요?
히실라드:당신만큼 안다고 하지는 못하겠지. (그 모습을 동정을 담아 바라본다.)
히실라드:(제 이마를 톡톡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히실라드:나는 당신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지, 확실히. (미간에 조금 주름이 잡힌다.)
켈레브라스:고통이 덜하지 않음을 알아요. (아주 희미한 미소가 어린다.) 그대는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하지요.
히실라드:... ... 당신을 행복하게 하려면, 그래야지. 내가 얼마나 당신의 상처를 잘 싸맬 수 있는지 당신은 아직 모르지.
히실라드:기대해도 좋을걸. (아주 옅게 웃어보였다.)
히실라드:(차마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입을 맞출 용기는 나지 않아, 그는 대신 손을 내민다.)
켈레브라스:(상처투성이인 손으로 그의 손을 쥐었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시험을 내야겠어요.
그대가 나와 그대의 관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답해 줘요.
히실라드:내가 돌아오지 못하고, 당신은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 (바로 대답한다. 너무나도 명징한 것이었기에.)
히실라드:그래.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불충분한가?
켈레브라스:그대가 그대의 상실로 인해 슬퍼할지언정 두려워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히실라드:나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누누히 말해왔을텐데.
히실라드:지금 당신이 어디에서 홀로 떠돌고 있는지부터 알아야겠지만... ... (다리를 한 번 더 바라본다.) 모란논이었나?
히실라드:그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다.
그 사이의 공백이 너무나 길군.)
켈레브라스:기대하게 되네요. (쓰게 웃는다.)
히실라드:내가 마음에 드나? (퍽 짖궃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켈레브라스: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히실라드:친구는 꽤나 순화시킨 말인 것 같은데. (여전히 미소를 띄며 문 너머를 바라본다.) 저 곳의 당신은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
켈레브라스:아직, 연인은... (광대뼈가 불그스름해진다.) 잘 모르겠으니까요. 이제 떠나가세요.
히실라드:(변하는 얼굴빛을 보며 눈을 한 번 굴리고는 다음 문으로 넘어간다.
취향 참 한결같군.)
손님 (GM):당신은 강철로 된 커다란 문을 열고 다음 문으로 향합니다.
손님 (GM):조용한 도시에 들어섭니다. 이 곳은 아까 전 지나왔던 고대의 도시처럼 완전히 무너진 모습은 아닙니다. 건축물도, 주택들도, 도로도, 교통수단도 모두 그대로인데 사람들만 없습니다. 저승이라서일까요?
꽃밭과 가로수가 있어야 할 곳마저 싸그리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 곳의 문은 이제 거의 개선문 수준으로 커져 있습니다. 무엇으로 되어있는지를 살펴보면, 이것은 분명 금강석입니다. 완력으로는 이제 도저히 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문 옆에는 망토를 두른 사람이 의자에 몸을 수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당신은 문에 글씨가 써져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어떠한 외투도 무덤의 추위에서 당신을 구해줄 수 없다
손님 (GM):동시에 문 옆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망토를 입은 청년이 고개를 듭니다.
그는 여전히 싱그럽고 아름답습니다. 얼마만큼의 세월도 그에게서 감히 젊음과 아름다움을 앗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슬픔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켈레브라스는 울고 있습니다. 모든 생기가 눈동자를 통해 눈물로 쏟아져나올 듯, 유령처럼 바랜 모습으로 계속해서 울고 있습니다.
히실라드:... ... (말없이 당신에게로 다가가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는 어떠한 인식의 벽에 부딫히는 것을 느낀다.)
손님 (GM):켈레브라스는 회색 망토 아래로 검은 옷과 검은 베일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는 당신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히실라드:안녕, 켈레브라스. (당신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 ... 오랜만이라고 해도 좋겠지.
켈레브라스:(손등으로 눈가를 짚어 눈물을 닦아낸다.) ... 네. 아주 오랜만이에요.
히실라드:(가죽으로 된 튜닉을 벗어 네 몸을 감싸준다. 비록 당신의 몸은 튜닉보다 컸지만. 이제 겉옷과 속옷밖에는 남지 않았다.)
켈레브라스:(양 손으로 튜닉의 끝을 쥐고 고개를 숙인다. 그가 자신을 끌어안고 입맞추는 것을 상상했다. 요정은 영혼이 부서지는 통증을 느낀다.)
히실라드:선하고 아름다운 당신. (하지만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앉아있을 뿐,)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나를 위해 애도해 주는군.
켈레브라스:내가 그대를 사랑하니까요. 그것으로 충분함을 아시나요?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히실라드:나는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이해하거나 되돌려주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해. 하지만... ... (무명 겉옷의 소매로 당신의 눈물을 닦아준다. 아마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무였을 것이다.) 노력은 해 보려고,
켈레브라스:다정한 사람. (시선을 내리깐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히실라드:이상한 소리 말고 시험을 내주는 게 어떨까. (몸을 일으켜 당신을 내려다본다.) 당신은 조금 더 원해도 괜찮아.
켈레브라스:그대가 내게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시지요?
켈레브라스:그래서 그대를 떠나보낸 적이 많아요. 우리는 오랜 기간 충돌하고 서로를 할퀴었지요. 하지만 그대는 불행히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히실라드:그게 사랑이야. (한마디로 일축한다.) 행복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마. 내가 감정은 없을지 몰라도 기억은 온전하니까.
히실라드:아니. 하지만 다시 사랑할거야. 당신이 빌어먹을 시험만 내주고 내가 두 개의 문을 더 나아간다면 승산이 있을 수도 있겠지.
켈레브라스:내가 당신의 그런 면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이 알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양손을 내민다.) 손을 이리 주겠어요?
히실라드:기억해. 느끼지 못할 뿐이야. 당신이 내게 주었던 사랑을 내가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어. (순종적인 태도로 손을 내민다.)
켈레브라스:(그의 손을 끌어 그대로 자신의 목 위에 얹는다. 고개를 젖힌다.) 목을 졸라요.
히실라드:정말 더럽게 짜증나는 시험만 내는군. 발라들은 다 이런가?
켈레브라스:그분들을 모욕하지 말아요, 부디. (그 손이 전해주는 체온은 요정을 절망하게도, 희망하게도 만든다.) 죽지 않으니 죽을 정도로 졸라도 좋아요.
히실라드:(
네게 남기는 모든 상흔이 내 심장에도 남는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목덜미를 짧게 떠돌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순간이었다. 창을 쥐는 이의 손은 활잡이의 것만큼이나 무자비했다. 그는 마치 적을 대하는 것처럼 당신을 교살하려 들었다.)
켈레브라스:(잠시간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터져 흐르기 시작한다. 볼을 적신 액체는 턱 아래로 흘러 그의 손등을 씻었다. 아득한 고통 속에서 속삭인다.) 이대로 영원히 죽어 버렸으면...
히실라드:이건 꿈이야, 켈레브라스. 우린 곧 깨어날 거고, 당신을 보는 나의 눈은 이전과는 다를 거야. 그것만 생각해. 그것만, 제발. (네 몸을 바닥에 아예 메쳐버리고 위에 누워 목을 꽉 누른다. 무자비함이 시험의 척도라면 만도스도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을 만큼. 꿈이 아니었더라면 웬만한 사람은 이미 모가지가 부려졌을 것이다.)
켈레브라스:(요정의 얼굴은 검붉게 달아올랐다가 희게 질리기를 반복한다. 그의 손목을 쥐고 팔을 타고 오르는 손길은 아주 여리고 부드러워, 마치 잠자리에서의 애무와도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몇 차례 꺽꺽거리며 몸을 비틀 때마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고, 이내 요정의 숨이 멈춘다.)
손님 (GM):금강석으로 된 문이 소리없이 열립니다.
죽은 요정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히실라드:(이내 차게 식어가는 시신을 마주하는 남자의 눈에는 온통 핏발이 서 있었다. 자신의 튜닉을 덮고 죽어있는 그 시신에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느끼고는 희게 질린 손가락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시신의 눈도 감겨주지 못한 채 다음 문으로 도망친다. 어떤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완벽한 타인, 그게 당신이었다.)
손님 (GM):이곳은 조용한 들판입니다. 드디어 살아있는 것이 있구나 싶었던 당신은 이 곳의 모든 식물은 종이로 되어 있어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나고, 잘못하면 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문은 이제 재료가 무엇인지 눈으로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커져있습니다. 문 한 짝의 크기가 거의 요새만하네요. 한 번에 눈에 담기에도 매우 어려운 알 수 없는 재질로 된 문입니다.
문 옆에는 망토를 두른 남자가 의자에 몸을 수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히실라드는 문에 글씨가 써져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알몸으로 와서 보자기에 감싸이고 수의에 싸여 어머니에게 돌아오니 몸에 걸친 모든 겉옷을 바치라
동시에 문 옆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망토를 입은 사람이 고개를 듭니다.
그는 회색 망토 아래로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솜처럼 부드러운 윗옷에 편안한 바지를 입고 -히실라드는 그것이 스웨터와 면바지라는 것을 모르겠지요.- 머리를 아래로 내려묶고 있습니다.
손님 (GM):켈레브라스는 자신이 본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둥글게 커진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히실라드:(도망치듯 건너온 다음 문에 그가 있음에 다시 한 번 이 곳이 꿈이라는 것을 꺠닫고 숨을 돌리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형태의 옷에 당황을 숨기지 못한다.)
켈레브라스:... 히실라드? (비틀거리며 일어서 그에게로 다가간다.)
히실라드:(멍하니 얼이 빠진 채 당신을 바라본다.)
켈레브라스:아, 세상에. 히실라드. (성큼성큼 걸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켈레브라스의 눈은 그의 기억보다 수 배는 더 깊고 지친 듯한 빛을 띠고 있었으나 순식간에 생기 넘치는 기쁨으로 바뀌었다.)
히실라드:켈레브라스, 당신 옷이... ... 도대체 무슨 옷을 입고 있는 거지? (눈썹이 곱게 찌푸려지지만, 불쾌감으로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켈레브라스:제 옷이요? 이건 그냥...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입은 옷을 바라보다가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오, 히실라드.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그대는 모를 거예요.
히실라드:미래에는... ... 사람들이 이렇게 입고 다니나? 편해보이긴 하는데. (영 착잡한 얼굴이다.) 내 상상력이 여기까지 뻗어나올줄은 몰랐군.
켈레브라스:(잠시간 환해졌던 얼굴이 금새 애수에 젖어든다.) 아주 먼 미래예요. 정말로 아주 먼... ... 잠시만 이리로 와 주겠어요? 손을 잡고 싶어요.
히실라드:(굳은 얼굴로 걸어가 손을 내민다. 영 뻣뻣한 자세로.)
켈레브라스:(깨지기 쉬운 유리조각을 만지듯 그의 손을 살며시 쥐어 본다. 불가사의할 정도로 활기에 가득찼던 미소는 금새 사그라들고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켈레브라스는 그가 기억하는 것보다 극단적으로 굴고 있었다.)
히실라드:(시시각각 바뀌는 표정에 조용히 눈치를 살핀다.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이 그를 어떻게 조형했을지 그로서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기에.)
켈레브라스:히실라드. (그 이름을 간신히 내뱉고 그의 손등을 쓰다듬는다.) 정말 그리웠어요. 정말로.
히실라드:(남자는 팔을 벌려 당신을 감싸안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는 그대로였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이 단죄받지는 않을 것이라 느꼈다.)
켈레브라스:아, 잔인한 사람... (세상의 모든 나라보다 노회한 요정은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기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를 단죄하거나 화를 내기에는 그의 가슴에 뚫린 공동이 너무나 거대했기에... 지친 듯 고개를 기댈 뿐이었다.) 사천 년을 기다렸어요.
히실라드:팔천 년. (그에게는 세상이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참으로 찬란한 저주야, 살아남는다는 것은... ...
켈레브라스:세상이 끝나기를. 그래서 그대와 다시 만날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기를...
히실라드:(말없이 당신의 어깨에 고개를 묻는다. 그 시간의 깊이를 이해할 수도 없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당신을 감싸주는 것 뿐이다.)
켈레브라스:그대의 마지막을 기억해요. 그때에 저를 바라보던 눈을. (그에게 입맞추지 않는다.)
히실라드:내 마지막은 어땠지.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 잔인한 줄을 알면서도.)
켈레브라스:제 눈 앞에서 마지막을 맞아 주었지요. 다정하게도. 그리고 미안해하는 눈을, 안심하는 눈을 하셨어요. 잔인하게도...
히실라드:그럼 내가 거기에서 어떻게, 했어야 할까? (손으로 제 눈을 가린다.)
켈레브라스:... 모르겠어요. 살아온 만큼을 고민해 봤지만 알 수 없었어요. 그대가 떠나셨다면 저는 살아가지 못했을 텐데, 그대가 곁에 있어 줬을 때에는 죽을 만큼 괴로웠어요...
히실라드: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지.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났고, 이제는... ... (당신의 눈을 바라본다.) 글쎄,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겉옷을 내게 주세요.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민다.)
히실라드:(순순히 겉옷을 벗어 내민다. 흰 반바지 차림의 속옷밖에 남지 않자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어깨를 펴고 네 앞에 선다.)
켈레브라스:(그의 겉옷을 말아 망토 속으로 밀어넣었다. 손을 빼낼 때에는 전에 없던 것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달처럼 차갑게 빛나는 단검.)
나를 죽여 주세요.
히실라드:(단점을 받아들고는 멍하니 너를 바라본다. 잠시간 말이 없었고, 눈은 점점 빛을 잃는다.)
켈레브라스:이것이 내가 사천 년 동안 바래 왔던 일임을 이제야 알았어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가 내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보느니 그대의 손에서 먼저 죽겠어요.
히실라드:이건 꿈이야. (되뇌이었다.) 나의 악몽일 뿐이야. 당신도.
켈레브라스:(그의 손을 억지로 끌어 단도를 쥐어 준다. 전에없이 강제적인 손길이었다. 켈레브라스는 그에게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군 적이 없었다. 이제까지는. 사천 년 전까지는...)
히실라드:(단도를 받아든다. 두 번의 망설임은 없었다. 어느 것이든 끝나야 했다. 나의 꿈과 당신의 현실 모두. 갈비뼈 사이로 단도를 박아넣는 데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어떻게 사람을 가장 빠르게 죽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켈레브라스:아... (신음성은 만족으로 인함이었다.)
손님 (GM):켈레브라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으로 쓰러집니다. 그의 피가 들판을 적시고, 종이로 된 식물들이 붉게 불들며 그 피를 온통 빨아들입니다.
종이꽃은 이내 핏빛이 됩니다.
그는 비켜서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문은 저절로 온당한 여행자에게 문을 열어줍니다. 당신은 다음 문으로 떠납니다. 혼자서. 쓰러진 그를 남겨두고.
시야가 다시금 희어집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백야만이 앞에서 당신을 맞이할 뿐입니다.
손님 (GM):이곳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흰 도화지같은 상태로, 첫번째 구역에 있던 어둠마저 없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입니다. 빛이 드는 것이 아니기에 그림자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이나 벽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 너머에 땅부터 하늘 끝까지 뻗어있는 문틈, 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선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문 옆에는 망토를 두른 남자가 의자에 몸을 수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문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문을 열 수조차 없으며, 히실라드는 문틈 옆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은 무無로 돌아간다. 그러니 경배하라, 강대한 에레쉬키갈라!
동시에 문 옆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망토를 입은 사람이 고개를 듭니다. 그는 당신이 기억하는 바로 그,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켈레브라스.
히실라드:(다가가 당신의 손을 잡는다. 속바지 뺴고는 온전히 벌거벗은 몸에, 당신의 피를 뒤집어쓰고 머리는 썩뚝 잘려나간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손을 내민 사람은 기억 속의 연인인 당신이었기에.)
켈레브라스:(그의 손을 쥔 채 일어서 이마를 맞댄다.) 지쳤군요.
히실라드:(말없이 당신과 이마를 맞댄다. 이유 모를 평온함이 느껴져 힘이 들어갔던 어깨는 점차 수그러든다.)
켈레브라스:이제 다 왔어요, 히스. 괜찮을 거예요. (그의 손을 가만히 매만질 뿐, 그 이상의 접촉은 않는다.) 이제 마지막 문이에요.
히실라드:내가 무엇을 하면 될까. (힘이 모두 빠진, 고분고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다정하게도 들렸다.)
켈레브라스:그대의 속옷을 주세요. 우리는 나신으로 와 나신으로 가지요. (그는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드문 일이었다.)
히실라드:(얌전히 속옷을 벗어 내민다. 피범벅이 된 나신은 어떠한 이교 이식의 사제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켈레브라스:(속옷을 받아들어 망토 속에 갈무리하고, 가만히 그의 몸을 바라본다. 근육으로 굴곡진 흰 몸이 피로 물든 그는 위협적었고, 꼭 그만큼...) 아름다워요.
히실라드:(제 몸을 무감한 눈으로 한 번 흝어보고는 고개를 든다.) ... ... 당신 것이었지.
켈레브라스:그랬었지요. (시선을 내리깔아 눈빛을 감춘다.)
히실라드:(당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꼭, 자신이 잊어버린 것.)
켈레브라스:... 이러지 말아 줘요. (눈매가 붉게 물드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아는 걸요.
히실라드:나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해. (고개를 숙인다. 속삭임은 건조했으나,) 당신이 이끌어줄 수는 없을까?
히실라드:아니, 아직은. (조금 웃어보였다.) 아직은.
켈레브라스:... 그대는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왔으니 이제 되찾아야 할 것을 가지고 돌아가야지요. 하지만 저승의 것을 가지고 나가는 데에는 대가가 필요해요.
히실라드:(제 벗은 몸을 내려다본다.) 이제 더 이상 내놓을 옷이 없어.
켈레브라스:규칙대로라면 그대의 육신을 바쳐야 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요. 그 대신 내놓을 만큼 그대에게 있어 소중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힘줄이 불거진 손등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히실라드:(말 없이 제 이마를 짚는다.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군.) 소중한 것이라고 하면... ....
켈레브라스:신체의 일부, 감각... 그런 것이요. 무엇이든 좋아요.
히실라드:당신이 제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켈레브라스:그대의 눈을 내가 가지게 되는 건 아닌 걸요. (푸스스 웃었다.)
히실라드:소중한 것을 바쳐야 한다고 했으니 바쳐야지. (눈을 두어 번 깜빡인다.) 꿈이니까.
켈레브라스:그대는 정말이지... (가만히 손을 뻗어 그의 눈을 가린다.) 잔인한 사람이에요.
손님 (GM):히실라드는 기묘한 감각을 느낍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무형의 무언가가 사라지는 감각을.
눈을 떠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히실라드:(그리고 찾아온 완연한 암흑에 가만히 홀로 서있는다.)
손님 (GM):히실라드는 추위를 느낍니다. 그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나신으로 서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낄런지도 모릅니다.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꽂히는 듯한 섬찟한 기분이 듭니다. 그렇지, 이 곳은 저승이었죠.
실금처럼 가늘었던 문틈이 넓어지는 것을, 히실라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켈레브라스가 그의 손을 잡습니다.
손님 (GM):당신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함께 걸어갑니다.
손님 (GM):당신은 불완전한 채로 켈레브라스의 인도에 따라 어둠 속을 걷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만이 지금 당신의 유일한 길잡이입니다
히실라드:(오직 네 손에 의지한 채로 어둠 속을 이끌려간다. 걸음걸이는 전에 없이 조심스럽다.) 조금은.
켈레브라스:조금만 더 걸으면 돼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히실라드:(조용히 침묵 속을 거닐며 그에게 남아있던 기억 몇 가지를 곱씹는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다툼의 기억들과 겹쳐지는 바로 이전 문의 당신이다.) 켈레브라스, 내가... ... 조금 더 의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지.
켈레브라스: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예컨데 어떤 의심을 말하는 건가요?
히실라드:예컨대, 우리가 행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들.
켈레브라스:그렇다면... 그대도 내가 의심이 덜한 사람이었다면 행복하셨겠지요.
히실라드:그랬을 수도 있겠지. 그걸 부정하지는 않겠어. 지금의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어느 정도 진실하게 말해도 되겠지.
켈레브라스:마음에 들어요. (잡은 손을 부러 흔든다. 상황에 걸맞잖도록.) 그대는 나를 상처입히지 않고자 하셨으니까. ... 사실, 그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떠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히실라드:내가 떠난다면 당신에게 더 큰 상처였을지도 모르잖아.
켈레브라스: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의 눈이 어떤지 그대는 영영 모르시겠죠.
히실라드:(대답이 없다. 네가 걷는대로 따라 걸으며 이따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켈레브라스:그대가 영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봤어요.
히실라드:내가 기억도 잃고, 사랑도 잃어서 완전히 껍데기가 되었을 때?
켈레브라스:저를 사랑한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저를 떠날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새로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대와 함께 멀리 떠날 수 있는 이를.
켈레브라스:진심이에요. 온 마음을 다하지는 않았더라도, 조금은 바라고 있을런지도 몰라요.
히실라드:미안하지만,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기는 힘들겠어. (무심코 당신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보이는 것은 없다.)
선하고 아름다운 켈레브라스.
히실라드:그래. (희뿌연 눈을 깜빡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아주 달콤해서, 항상 당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비둘기가 집을 그리워하듯이.
히실라드:내가 이겼군. (당신의 손을 꼭 붙잡고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켈레브라스:나를 사랑하고 싶나요?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게 될 텐데요.
히실라드:... ... 그건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도록 해.
켈레브라스:나는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손님 (GM):이내 당신은 어떤 제단에 도착합니다. 켈레브라스와 함께.
저승의 끝이라기에는 너무나 황량한,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법한 크기의 돌로 된 제단입니다. 어찌나 그 위에서 많은 것이 태워졌는지 돌은 온통 새까맣게 물들어서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죠. 그저 이 제단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제단 위에서 희미한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필시 꽃향기일 것입니다.
히실라드:(고개를 돌려 당신이 있는 쪽을 바라본다.) 무엇이 있어?
켈레브라스:붉은 꽃이 있어요. 좋은 향기가 나는군요. (그의 손을 쥐어 꽃에 가까이 대어 준다.)
히실라드:(꽃을 그러쥐고 향기를 맡아본다. 첫번째 문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환하게 웃음짓는다.)
손님 (GM):당신은 가슴 속에 무언가가 들이차는 것을 느낍니다. 수천 송이의 꽃이 동시에 봉우리를 열어 부드러운 꽃잎이 흉곽을 간지럽히는 것 같기도 하고, 죽음처럼 뜨거운 불길이 몸을 사르는 것 같기도 하고, 절망의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익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 그것은 바로 사랑! 당신은 당신의 곁에 선 요정을 향한 불멸의 사랑을 되찾았습니다.
히실라드:(더할 나위 없이 깊은 한숨과 함께 당신을 끌어안는다. 당신의 머리카락, 당신의 향기, 옷자락이 사부작거리는 소리,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순간 그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손님 (GM):... 나의 히스. (그 말을 내뱉고 목이 메인다.)
히실라드:당신을 잃고 내가 어떻게 숨을 쉬었을까. (더욱 당신의 버드나무같은 몸에 팔을 감았다.) 당신이 내 호흡이자 향기인데.
손님 (GM):(그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 어깨에 입술을 묻는다. 그의 벗은 등을 쓸어내리며 속삭인다.) ... 사랑해요.
히실라드:(그제서야 제가 나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하지만,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당신의 품이라서.) ... ... 나도 사랑해. 영원히.
켈레브라스:꿈에서 깨어나면, 히스. 내게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요?
히실라드:아무리 말해도 부족한 말. (더욱 당신에게 안겨든다.) 사랑한다고.
잘 가요, 히실라드. 깨어나면 다시 만날 거예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 ENDING 2.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켈레브라스:당신은 모든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켈레브라스가 떠난 어둠 속에 당신은 홀로 남겨지지만 더 이상 그 어둠은 어둠이 아닙니다. 그와 다시 한 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에 마치 이불에 감싸인 것만 같이 따듯하고, 더 이상 살을 에이던 추위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손님 (GM):그리고,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일어나보면, 당신이 마지막으로 바쳤던 시력은 완전히 돌아와 있네요. 옷은 사라져서 완전히 나신인 채로 잠들었지만 이불 안에 파묻혀 있으니 이불이 맨살에 닿는 폭신한 기분이 그저 좋을 뿐입니다.
당신은 가슴 속에서 사랑이 타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잘 가요, 히실라드. 깨어나면 다시 만날 거예요. 그가 그렇게 말했지요. 당신은 품 안에 안겨드는 연인을 끌어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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