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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1.
밤이었다. 어쩌면 밤보다 어두운 저녁이었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동쪽을 향해 간다.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를 죽이고, 저들 중 몇 명이나 살아 돌아올까. 살아 온다고 다야? 온전하게 와야지. 동쪽으로 향할수록 공기에 매캐한 냄새가 섞이는 것은 단지 횃불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말들이 돌다리를 건넌다. 별들의 요새에서는 사람들의 목숨이 등잔불 흩어지듯 꺼졌다. 이름이 무색하게 어둠에 휩싸여 이 곳에서는 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로멘다킬 다리를 건너오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정확히는 한 명의 유해를 수송하는 네 명의 남자가 말을 끌고 온다.
대장 : 스무 명이나 왔습니까?
스테오르 : 임시 섭정님께서 특별히 명하셨습니다. 저 자는 무슨 일을 당했습니까?
대 : 온지 나흘 째부터 자기 혼자 미쳐서 미나스 모르굴 쪽만 보다가 마지막 열흘 째 되는 날 돌기둥에 머리를 박고 죽었습니다. (머리가 깨진 젊은 남자는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의 얼굴은 마지막까지 공포에 질려 창백했다. 늙수그레한 경비대장은 혀를 찼다.)
스 : 안 됐군요.
대 : 이번 경비대는 사람이 많으니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수인계는 특별히 하지 않아도 좋겠지요. 적이 침략하면 봉화를 피우십시오. 5분 내에 오스길리아스 서부에서 지원이 올 겁니다.
스 : 물자 공급과 이동은 어떻습니까?
대 : 모두 다리로 이루어질 겁니다. 전령은 길소니엘 섬까지만 이동합니다.
스 : 다리가 침수되면 어떻게 합니까?
대 : 지금은 건기입니다만, 그렇게 되면 이동은 힘들겠지요. 만일 그런 일이 있을 시 물자 공급은 매를 쓰겠습니다.
경비대가 일행을 지나쳐 오스길리아스 서쪽으로 사라진다. 새로 짐을 떠맡게 된 이들은 동쪽으로 사라진다. 사람들을 직진해 조금 더 말을 달린다. 몇몇 말들은 그림자가 낀 파괴된 도시에 벌써 주눅드는 것이 보였다. 무너진, 무너진, 무너진, 무너진 건물들. 죽은, 죽은, 죽은, 죽은 영광들. 그리고 붉은빛을 내뿜는 모르도르는 아주 가깝게 보인다. 가까스로 남아있는 더러운 길을 지나자 옛날 모습이 무색한 오벨리스크가 남아 있다.
스테오르 : 여기서 묵는다. 이곳에서 동쪽, 북쪽, 남쪽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다섯 개인데, 설마하니 나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특히 북동쪽에 위치한 툴카스의 문은 나즈굴이 점거한 미나스 모르굴과 가까우니... 알아서 해. 우리의 임무는 알겠지만 이 곳에서 열흘 동안 경비를 서면서 동쪽에서 오스길리아스를 재침략하려는 낌새가 보이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나는 다들 얼굴을 봐서 알겠지만 이 곳에서 최종 결정권자로서 임시적으로 대장 지위를 맡게 된 사람이고. ... ...그리고...... 아니, 이건 이후에 말하지. 이상.
2.
스테오르
: 경비대 치고는 많이 왔다고 생각했겠지, 다들. ... ...우리가 맡은 일이 또 하나 있다. 군사 기밀이므로 이 사실을 경비대가 교체되어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도 외부에 발설할 시에 발설 시기와 무관하게 군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다들 힘의 반지 전설 정도는 들어봤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놀도르 요정 장인 켈레브림보르가 만든 요정의 세 반지, 난쟁이의 일곱 반지, 인간의 아홉 반지. 우리가 힘의 반지에 대해 아는 것은 인간의 아홉 반지를 가졌던 이들이 타락하여 나즈굴이 되었다는 것 뿐이고. 요정의 반지와 난쟁이의 반지는 행방이 묘연하지. 힘의 반지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사우론은 아름다운 외형과 감언이설로 반지 제작자 켈레브림보르를 속여 어떤 반지를 만들었다고 해. 모두를 지배하는, 모두를 찾아낼 모두를 불러낼 반지. 아무 표식도 없는 황금 반지.
그 반지가 오스길리아스에 떨어져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 곳에 온 목적은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 반지를 찾아 곤도르로 가져오라는 명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거야.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을 만큼은 적고...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난 그저 명령 전달자일 뿐이야. 운반책은 이후에 알리겠다. 발견되지 않으면... 다행인지 아닌지 나도 모르겠네. 그것을 찾는 즉시 내게로 가져와. 여덞 시간 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것을 지킬 테니.
무엇을 원하든 그 소원을 이루어줄 정도의 권능.
그리고 어떤 사람이 소유해도 진정한 '반지의 제왕'이 아닌 자는 무조건 파멸한다고도.
그는 힘을 나누지 않아.
3.
스테오르
: (서부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다. 표정이 그다지 밝지 못하다.) 반지를 찾은 사람이 있습니까? 첫날이니까 기대는 안 하지만. ... ...그러니까... 방금 전령에게 받은 전갈의 내용은 무엇이었냐하면... (굉장히 당황한 눈치이다.) 불에 던져 보라고... ... ...이게 그 반지란 말이지. (남자가 점차 그것에 다가간다. 그가 반지를 만지려고 하는 행동은 거의 관성적일 정도로 자연스러웠으나 눈빛은 반쯤 풀려있었다.) (오빠!) (남자가 화들짝 놀라 손을 움츠린다.) ... ...저것을 처음으로 가지고 있고 싶은 사람이 있나? 일단 나는 아니네.
DAY2
1.
어제같은 밤이다.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서쪽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다그닥,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어떤 형체를 태운 흰 말이다. 망토를 푹 뒤집어 쓴 남자가 말에서 내린다. 키가 크고 우아한 인상을 준다. 망토를 벗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얼굴이 드러난다. 짧은 검은 머리칼에 잿빛 눈을 가진 인간이다.
순찰자 : 안녕하십니까, 원래 전령이 길소니엘 섬까지 오기로 되어 있었다고 들었지만... 저는 전령이 아니니까요. 공무 수행은 잘 하고 계신지요. ... ...어떤 친구에게 부탁을 좀 들었습니다. 이 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오라고 하더군요. (두네다인 순찰자. 현재 곤도르, 로한, 임라드리스, 회색항구, 어둠숲, 로스로리엔, 샤이어, 아르노르의 상태를 모두 알고 있음.)
나는 이제 가도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반지를 절대로 끼지 마시오. 사우론은 둘째치고...
무슨 소리가 들린다. 새가 퍼덕거리는 소리 같다. 그리고, ... ... 키아아아아악! 피를 차게 얼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히든룰 1 : 필멸의 인간들에게 아홉 개의 반지 >
뒤틀린 짐승을 탄 검은 망토를 쓴 형체. 나즈굴. 세 나즈굴이 미나스 이실에서 날아온다. 마치 여기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아는 듯 곧장 주둔지로 돌진한다. 찢어지는 울음소리, 엄습하는 공포.
스테오르 :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불도 피우지 않았는데.
순찰자 : 누가 반지를 사용했군. 제정신들이 아니야.
아 에아렌딜, 가장 빛나는 별이시여!Aiya Eärendil Elenion Ancalima!
남자가 높게 쳐든 유리병에서 엄청나게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온다. 기세가 마치 태양같다. 라이사를 막 공격하려던 나즈굴의 짐승이 뜨거운 불에 데인 듯 뒤로 물러선다. 짐승과 나즈굴 모두 빛을 견디지 못하고 미나스 이실로 후퇴한다, 도망친다.
순찰자 : 망토와 함께 주웠소. 다들 정신이 정말 응애 수준이군, 반지가 있다는 걸 느꼈으니 이제 저것들이 뻔질나게 올 거요. 됐고, 이젠 다 글러먹었소. 알아서 잘 하시오, 이왕 이렇게 된 것 뺏기지나 마시고. 난 갑니다.
남자가 말을 타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DAY3
1.
스테오르
: 어제 말했던 대로 오늘은 순찰하면서 팔란티르를 조금 찾아보도록 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뭐 어쩔 수는 없는 것이고. 어쨌든 실종된 물건이고 우리는 그간 운이 너무 좋았어. 잠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 설사 강 안에서 시신을 발견하더라도 놀라지 말고. 원래 그런 곳이야. 그리고, 늪은 위험하니까 빛을 따라가지 말고.
2.
스테오르
: 정말 갈수록 태산이네. ... ...어제 그가 말한 것에 대해 정확히 찾아봤더니, 3시대 중기에 오스길리아스에서 벌어진 곤도르 내전 당시에 이 곳에 있던 팔란티르가 안두인 대하에 빠져 실종되었다고. 그 이후 도시가 버려지면서 아무도 찾을 생각을 못 했다고 했었는데. 우리에겐 잘 된 일이야. 이 돌이 오스길리아스에서 실종된 그 팔란티르가 맞다면, 이것으로 다른 팔란티르끼리의 대화를 도청할 수 있다. 가장 우월한 팔란티르거든. 운만 좋으면 사우론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어. 문제는, 팔란티르는 적법한 곤도르 통치 혈통에게만 허용된다는 거지. 왕들과 섭정들에게만. 우리가 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하지만 필요하다면 써야지.
DAY 4
1.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서쪽에서 전령이 달려온다. 검은 말을 타고 망토를 푹 뒤집어 썼다. 평소 오던 수더분한 아저씨가 아니다.
검은 머리에 새파란 눈을 가진 젊은 창백한 남자.
전령 : 에이셀웬 님께서 밤에 팔란티르를 보라고 한다.
스테오르 : 그건 무슨 연유이지요?
전 : 그때 가서 알게 되겠지, 쓸데없는 질문은 반갑지 않군.
스 : 아... 예...
전 : 에이셀웬 님의 직속 전령입니다. 곤도르 장교요. 거 사람 성질머리하고는...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순찰 시작합시다... 피곤해도 조금만 참고...
2.
스테오르가 팔란티르를 사용하자 어떤 여인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에이셀웬이다. 베일을 두껍게 내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목소리는 쉬었다.
스테오르 : 섭정공님.
에이셀웬 : 수고가 많소. 이제 사흘 남았던가? 반지는.
스 : 명하신대로 몇몇이 돌려가며 보관하고 있습니다.
에 : 그 반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곤도르로 와야 해. 사우론은 이제 반지가 없어도 가운데땅을 무너버릴 수 있어. 모르도르는 펠렌노르 전투에서의 패배와 아이센가드의 몰락을 모두 메꾸었다. 징그러운 것들. 이제 우리에게는 옳지 않은 승리 말고는 희망이 없어.
스 : 예.
에 : 나는 파라미르 공과 나의 백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네. 왕가의 혈통이 끊겨도 백성들은 살아가야 해. ... ...사흘이야.
스 : ... ...오크는 번식력이 좋아. 삼 년이면 무리하긴 했지만 불가능은 아니야.
DAY5
1.
스테오르
: 순찰을 시작하기 전에. 어제 여길 보고 있는 눈을 발견한 이들이 있다고 들었어. 동쪽에서 언제라도 수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무조건 봉화를 올려. 내게 명령 거칠 필요 없어. 만약 지원군이 잘못 오더라도 동부 방어가 무너지는 것보다는 지원군이 허탕치는 게 나으니까. 그렇다고 봉화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고. 오물이 있으면 불태우되 불을 피운 것이 잘 드러나지 않도록 젖은 장작을 쓰시게. 검은 연기는 밤에 피워봤도 안 보이니까.
2.
서쪽에서 전령매가 날아 온다. 무슨 일이 있나? ... ...매의 발톱에 묶인 편지를 읽자 남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남자가 팔란티르에 손을 대자 돌의 중심 안에서 빛이 천천히 회전한다. 팔란티르에서 바닥에 쓰러지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검은 베일을 머리에 두른 마흔 줄의 여인. 입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온다. 얼굴은 희게 질렸다. 몇 년만에 드러난 그녀의 검던 머리칼은 스트레스로 인해 하얗게 세어 있었다.
스테오르
: 이건 내 생각인데, ...섭정님이 팔란티르를 써서 모르도르와 사우론의 의중을 염탐하면서 반대로 조종당할 수도 있었잖아. 그런데 그 일을 막으려고 너무 정신적인 기력을 많이 쓰신 것 같아. 몸이 버틸 수 없는 정도로. ... ...새 임시직을 임명하시겠지, 조만간. 괜찮을거야.
DAY 6
1.
안두인 대하가 엄청나게 불어났다. 오스길리아스에 진입할 때 세워 두었던 임시 나무 다리는 쓸려 내려간지 오래였다. 돌다리는 건재하지만 이전 오스길리아스 동부에서의 침투를 막느라 두세 구간씩 끊겨 있다. 오스길리아스 서부로 건너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서부에서 동부로 건너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르크들이 쓰다 버린 1인용 배가 있으나 상태가 좋지 않아 언제 가라앉을지 모른다.
스테오르 : 할 일은 해야지. 순찰을 시작하자. 특별히 당부할... ... ... 쉿, 잠깐만. ... ...(조용히 뒤의 화살통에서 살을 꺼내어 소리가 나는 곳에 재빨리 쏜다. )
그와 동시에 오크들이 오스길리아스 성벽을 넘어들어온다.
스테오르 : 정탐병이다! 봉화를 올려!
서부에서 화살이 날아와 앞에서 돌격하던 몇몇을 쓰러트린다. 오스길리아스 서부에서 보병들이 건너오지 못해 빠르게 강변에 궁수들이 배치되었다.
2.
... ...퍼덕이는 깃털 달린 날개 소리가 들린다. 어둠에 몸을 숨겨 들키지도 않고, 독수리가 날아온다. 세 마리의 거대한 독수리가 발톱을 세우고 남은 오르크 잔당들에게 그대로 덤벼든다. 오르크들이 발톱에 꿰여 원래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던져진다. 살아남은 것들은 급하게 퇴각한다. 독수리가 일행들 앞에 착륙했다. 눈이 총명하다.
독수리
: 저희가 너무 늦었군요. 애도를 표합니다.
저는 안개산맥에 사는 독수리로, 과이히르의 신하입니다. 에이셀웬이 어제 숨을 거두었습니다. 엑셀리온의 탑 꼭대기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전령이 발견했습니다. 발치에는 검은 돌이 놓여 있었다더군요. 항상 베일을 쓰고 다니던 머리는 알고 보니 아흔 살 먹은 부인처럼 희게 세어 있었다고. 아직 마흔 살밖에 안 된 여자가. 삼 년 동안 사우론과 정신 싸움을 하다니, 무모하기도 하지. 팔란티르의 해악을 그나마 버텨낸 데네소르가 난 인물이기는 했습니다. 그렇게 죽어서 그렇지. 솔직히 말해 미스란디르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에이셀웬이 반지의 소재를 간파했으리라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마 두네다인 특유의 통찰력으로 추리했겠지요.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왔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녀도 데네소르의 친척이며 팔란티르는 그녀에게 충실했을 터이니.
원래대로라면 섭정직은 파라미르에게 반환되어야 하나, 그는 섣불리 이실리엔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는 이실리엔이 격파된다면 아노리엔의 붕괴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로미르가 죽은 지금, 두 형제를 대신할 만한 장수는 돌 암로스의 임라힐 대공밖에 없지만 그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 섭정직이 누구에게 가야 하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탐내는 이들 중 인물이 없지요. 애초 에이셀웬의 진가는 그녀가 그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습니다만. 당신들은 군인이니 곤도르로 반지를 가져가게 될 것입니다. 아마 당신들이 거부하더라도, 곤도르는 어떻게든지 반지를 얻을테니까. 다른 이들이 아니라 에이셀웬이라도 그리 했을 것입니다. ... ...반지를 내놓지 않으면 글쎄요. 그들이 당신들을 살려둘까요?
여기까지가 저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스란디르가 전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희망을 가져라. 아무리 깜깜한 밤이지라도 낮이 오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옛날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아무도 반지를 쓰지 않았으리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엘론드 영주가 반지 원정대에게 어떤 맹세도 두지 않았듯 그대들 또한 어떠한 규율에도 묶이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씨 뿌린 것은 자신이 거둘 것이다. 희망을 가져라. 우리에게 남은 건 결국 그것 뿐이므로.
3.
대해의 어귀에서, 모래언덕과 돌무더기에서 남풍이 도주하네. 갈매기 울음 소리를 실은 남풍이 성문에서 신음하네.
오, 한숨짓는 바람이여!
이 밤 너는 무슨 소식을 내게 가져왔는가?
아름다운 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
그가 오지 않음에 내 마음은 애끓네.
DAY7
1.
오늘에서야 비로소 안두인의 물이 잠잠해졌다. 어느새 서부에서 새 줄다리를 걸어 놓았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날개 달린 곤도르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동부로 건너온다. 몇몇은 땅을 팠다. 죽은 이들은 풀린 땅 속에 잠든다. 주변에 피었던 흰 꽃 몇 송이만이 서쪽 가는 길을 배웅한다. 맨 앞에 선 사람은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긴 남자이다.
대 : 곤도르로 돌아오라는 명령이다.
스 : 예.
대 : 반지는 우리가 회수하겠다.
스 : ......예.
스테오르의 손에서 반지가 무겁게 떨어진다. 남자가 그것을 창끝으로 들어올려 두꺼운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당신들도, 따라오시오. ... ...경비대가 멈춘 곳은 미나스 티리스 동부의 섬 카이르 안드로스였다. 그 곳의 건물 하나, 진입. 크지 않은 원탁에 약 십여 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있다. 다들 지체높은 사람들인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눈이 번뜩인다. 모두 쉽사리 반지에 손을 대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눈빛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쪽을 등지고 앉은 젊은 남자의 표정만이 고요하고 흔들림 없었다. 섭정 데네소르의 차남 파라미르. ... ...회의가 재개되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파라미르가 뭐라 말을 하나 알 수 없는 목소리와 섞인다. 노리엘, 에투일갈라드, 아르펜님, 하이레델, 오도르만, 러셀, 윈스롭, 알릭, 메넬미르, 이스티온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평온한 침묵이었다. 양심에 빚지지 않은 이들.
? : 형제의 피를 마시는 자,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그저 네 욕망일 뿐. 검, 피의 맞닿음, 두려움이 없는 심장. 너는 전장에서 숨쉬고 전장에서 스러지기를 원했으며 결국 그리 되었다. 만족하는가?
? : 네가 한 일은 하찮고 그 결과치고는 가엽고나, 작은 아이야. 네가 그토록 부정하던 보물 때문에 아비를 의심하고 동료에게 살을 겨누었구나. 네 투쟁은 의미 있었는가?
? : 넬슨의 아들, 오스길리아스 경비와 여타 다른 복무의 공로를 고려하여 일 계급 특진. 이제 네 형들보다 높은 직위를 차지했다. 네게는 영예 있을 것이라 하였고, 그리 되었다. 너는 네 안온을 존경과 바꾸었다.
? : 네 소원은 너에게 달려 있지, 악몽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그만두는 것은 너 스스로여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너는 나를 위해 손에 피를 더 묻혔구나. 불쌍한 것. 나는 네게 힘을 주겠다. 이것은 동료들의 피 묻은 힘이므로, 정화는 네 스스로의 것이다.
? : 헤더의 아들아, 네 아비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말을 타다 고꾸라지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너는 그의 기억이, 몸이, 사고가 마비되어도 오직 네게로 향하는 사랑을 원했으므로 그리 되었다. 가라, 효자이면서 불효자인 자.
? : 너는 소원도 빌지 않았지. 알고 있나? 그 눈에 똑바로 칼 겨누었던 이 너뿐이란다. 고통 뿐인 삶에서 부유하면서, 그리 살거라. 쥐덫에 걸린 뱀을 보았던 이들이 목숨을 살린 쥐덫 주인을 기억하겠지.
? : 부관이 여인에게 서찰을 건넨다. 곤도르의 딸 이아시엘은 오스길리아스 서부에 고정배치되었다. 오롯이 네가 있어야 하고 네가 있기를 바라는 곳을 바랐기에 그리 되었다. 전장.
? : 너는 죽은 자에게 네 마음의 반쪽을 주고 살았으므르 반쯤 죽음과 함께였구나. 죽은 이를 그리었기에 네 운명도 그리 되었다.
목소리 사이를 다른 목소리가 밀고 들어왔다. 곤도르의 인간들이 탐욕에 수군대던 와중에 오직 침묵하던 파라미르가 입을 떼었다. 곤도르는 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오. 소유자는 데네소르의 아들 파라미르이며 나를 포함한 어떤 이도 이것을 손가락에 끼우는 형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을 명합니다. ...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감히 적진 한가운데서 끝까지 방어선을 수비했던 섭정공의 아들에게 반발할 사람은 없었다. 그저 오고가는 눈빛 뿐. 다른 회의는 금방 끝났다. 다음 섭정은 나이 지긋하고 노련한 남자로 정해졌으나 그는 반지를 가지고 있지 않게 되었다. 끝났으면 다들 나가 보도록 하지요. ... ...홀이 비워진다. 지체 높은 사람들 순으로. 경비대의 순서는 맨 마지막이었다. 파라미르는 끝까지 남아 있었다. 절대반지는 테이블 중앙에 그대로 놓여 있다. 문 뒤에서 어떤 형체들이 툭 튀어나오다가 잘못해서 경비대 중 한 명에게 부딪혔다. 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여 곧장 파라미르만 있는 홀로 뛰어 들어간다. 간단한 배낭을 맨 여행복 차람의 두 여자 호빗. 파라미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한다. 파라미르의 손에서 뭔가가 반짝 빛난다. 황금색, 아무 무늬도 없는 반지. 이윽고, 문이 닫힌다. ... ...고요. ... ...이탈라우레의 짐 속에서 그때까지 숨어있던 나방이 기어나온다. 들려오는 목소리. 이윽고 나방이 경비대원들의 머리 위를 맴돌다 서쪽으로 날아간다. 희망은 언제나 희박했어. 그것도 고작 바보의 희망일 뿐이었지.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네.
ENDING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파라미르가 지닐 교묘한 복제품과 다시 한 번 반지를 버리러 떠난 두 호빗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마지막 페이지는 다른 이가 이어 쓸 것이고 우리가 그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모든 역사의 잉크는 피와 눈물이었다. 그것을 써내려가는 펜은,
욕망 (欲望/慾望)
[명사]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인간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추구하는가?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가?
계속 책장을 넘겨보자. 낡은 종이에서 느껴지는 향기,
희망 (希望)
[명사] 1.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 2.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
자유란 '거부하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는가?
용기란 무엇인가?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아무도 모르는 흘러가는 이야기로서. 마음 속에 죄책감, 홀가분함 그리고 비밀을 안고 각자의 운명으로 간다. 욕망한 자는 비틀린 방식으로나마 그것을 이루었고 인내한 자는 욕망을 다시 제 맘 속에 간직한다. 열일곱 갈래로 갈라질 길이 어떻게 끝날지 누구도 모른다. 그 길을 걷는 자신만 알 뿐. 단 하나 느끼는 것은, 실낱 같은 희망. 우리, 그것 때문에 욕망에 발목을 붙들리면서도 여기까지 피 흘리며 달려온 것 아니던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이제, 그저 기다립시다.
다른 다섯 명의 경비병이 여느 때와 같이, 다시 오스길리아스 동부로 향한다.
태양의 3시대 3024년 어느 겨울, 오스길리아스 동부에 파견된 이들은 평소보다 그 수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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